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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학사

중국 문학사에서 본 한유와 고문부흥운동의 문학사적 의미

by onulgogo 2025. 7. 5.

중국 문학사에서 고문부흥운동은 왜 전환점이 되었는가

중국 문학사에서 한유(韓愈)는 뛰어난 문장가일뿐만 아니라, 문학과 사상의 방향을 동시에 바꾼 사상가이자 실천가였습니다. 그가 주도한 고문부흥운동(古文復興運動)은 단순한 문체 개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유교 윤리를 바탕으로 하여, 형식만을 중시하는 변려문을 반대하고 고문을 쓸 것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당대 문학이 빠져 있던 형식주의적 병폐와 철학적 공허함에 대한 강력한 문제 제기였으며, 문학이 인간성과 도덕성,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는 사명에 대한 회복 운동이었습니다.

당대는 율시와 변려문 중심의 형식미가 정점에 달한 반면, 문학의 내용과 사상은 점차 부차적인 요소로 전락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문학의 변질을 비판하며, 한유는 문장의 본질은 '도(道)를 담는 그릇'에 있어야 한다는 고문 중심의 문학 철학을 제시했습니다. 이처럼 그의 고문은 단순히 한대 이전의 옛 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유가적인 도가 담겨 있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문부흥운동의 배경과 한유가 추구한 문학관, 그리고 그것이 중국 문학사 전반에 미친 영향과 후대의 계승 양상까지 함께 살펴보며, 왜 이 운동이 단순한 문체 개혁이 아니라 문학의 패러다임 전환이었는지를 분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 문학사 속 한유와 고문부흥운동

고문부흥운동의 배경: 변려문의 형식주의에 대한 반발

당대의 주류 문체였던 변려문(騈儷文)은 남북조를 거치며 궁정 중심으로 발전하여, 대구(對句)와 음률, 수사적 장식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내용은 빈약하고 사상적 깊이가 결여된 문장이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특히 당 중기에 이르러 이러한 문체는 권력 찬양이나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전락하였고, 문학이 현실 문제나 인간 정신을 다루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유는 고대 한, 진 이전의 문장으로 돌아가자는 고문부흥운동을 제안하며, 형식보다는 의미, 수사보다는 진실성, 장식보다는 사상을 강조했습니다. 고문은 자유로운 문장 구조, 논리 중심의 구성, 담백한 언어 사용을 특징으로 하며, 특히 개인의 철학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는 문체였습니다. 따라서 그가 쓴 글은 개성적이고도 내용이 구체적이며, 자연스러우면서도 아름답고 생동하는 리듬이 살아있습니다. 한유는 고문을 통해 문학의 본질을 되찾고자 했고, 이를 통해 문장이 단지 언어적 유희가 아닌, 사상과 윤리를 전하는 살아 있는 표현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문(文)은 도(道)를 실어야 한다"는 명제를 통해, 문학의 도덕적 사명을 선명하게 천명했습니다.

한유 문학의 특징: 도덕, 논리, 실천이 살아 있는 문장

한유의 문장은 형식적 규범보다는 논리적 구조와 도덕적 철학에 기반한 명확한 전달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는 「원도(原道)」, 「사설(師說)」, 「논국학서(論國學書)」 등에서 유교의 도덕정신을 문학적으로 재해석하고, 문장을 통해 독자에게 사상적 실천을 촉구합니다. 특히 「사설」에서는 스승의 존재와 교육의 본질을 주제로 삼아, 지식인의 책임과 인간관계의 윤리를 고찰합니다. 이 글은 단지 철학적 주장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체의 교육 체계와 지식의 전승 방식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고 있으며, 고문문체의 논리성과 명료함이 매우 뛰어납니다.

한유는 문학이 개인 감정의 표현이나 미적 쾌락을 넘어서, 사회와 시대를 움직이는 힘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문장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되, 진심을 담고 있으며, 수사적 기교를 경계하면서도 문학의 설득력과 철학적 무게를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이러한 문학관은 이후 유종원, 구양수, 소식 등 송대 문인들에게 계승되어, 문학과 도덕, 지식과 사유를 통합하는 송대 고문 문학의 흐름을 형성하게 됩니다.

고문부흥운동의 문학사적 의의: 문학의 윤리적 회복

한유의 고문부흥운동은 문체의 개혁이라는 차원을 넘어, 문학의 정체성과 기능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 실천 운동이었습니다. 그는 문학이 단지 아름다운 문장을 생산하는 장르가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고 인간을 바르게 이끄는 사명을 지녀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고문은 단지 과거의 형식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 인간과 사회를 향해 발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철학적 틀이었습니다. 또한 고문문체는 단지 유가적 도덕주의에 머물지 않고, 도교적 사유나 현실에 대한 성찰, 인간 심성에 대한 탐구를 담아낼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유는 자신의 문학을 통해 시대를 경고하고, 도덕의 붕괴를 비판하며, 교육과 정치, 인간성의 회복을 주장했습니다. 그의 고문은 단지 개인의 명예나 문장의 미학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문학이 인간과 사회를 향한 실천적 철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실천의 장이었습니다. 이로써 고문부흥운동은 중국문학사에서 단일 문체 개혁이 아닌, 문학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해답을 던진 문학적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중국 문학사에서 한유는 어떤 유산을 남겼는가

한유는 문장을 '도(道)를 실은 그릇'이라 여겼습니다. 그의 고문부흥운동은 단지 한 시대의 유행을 바꾸는 운동이 아니라, 문학이 시대정신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전범이었습니다. 한유가 남긴 글들은 이후 송대의 성리학적 문학으로 발전하였고, 유학이 단지 사상 체계가 아니라 문학을 통해 구현되고 전파되는 살아 있는 지성의 흐름이 되도록 이끌었습니다. 또한 그의 고문문체는 명대 고문파, 청대 실학파, 심지어 현대 신문학 운동에서도 여러 차례 재조명되며, 문학과 사상, 문체와 윤리가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고전적 기준으로 남아 있습니다.

결국 한유는 문학의 형식을 새롭게 한 것이 아니라, 문학의 본질을 회복시키고, 문인이 어떻게 시대와 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고문부흥운동은 문학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시대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사유와 실천을 견지할 수 있다는 신념의 선언이었습니다. 중국 문학사는 한유를 통해 '문학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진지하게 응답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응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